▲ 유년의 추억과 향수를 간직한 메꽃의 꽃말은 충성, 속박, 수줍음이다.

2개의 꽃 쌍으로 펴
메는 밥이란 뜻
배고픔 잊게 해줘
차로 마시면
당뇨 고혈압에 효과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서~ 영화 볼래 … 메꽃 같던 우리 딸년 호박꽃이 다 되었네♬> 남촌 들녘에서 듣던 노동요 모심기노래의 일절이다.

그 때는 보리타작이 끝난 유월에 모내기를 했다. 어렸던 내가 못줄을 잡고 있으면 이웃 아낙과 장정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손가락 끝을 곧추 세워 모를 심었다.

무논엔 써레질이 한창이고 들밥엔 보리알이 숭숭 박혔어도 꿀맛이었다.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 <메꽃이 무어 그리 이쁘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둑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메꽃을 예사롭게 보아 넘겼던 것이다. 그러고는 벗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메꽃의 뿌리줄기를 캐어 먹으며 놀았다. <모메싹>이라 했던가? 부드럽고 덜지근한 맛이 났다.

소나 돼지가 좋아해 넝쿨을 걷어 먹이기도 했다. 그럴라치면 어른들이 "야야, 모메싹 너무 먹이지 마라, 설사한다" 하셨다.

그 때는 메꽃 뿌리(메싹, 모메싹)뿐 아니라 띠풀(피기/삘기) 참꽃(진달래) 산딸기 버찌 오디 찔레순은 물론 미영(목화씨방) 까마종이 괭이밥 뱀딸기 보리깜부기까지 따 먹고 놀았다. 그러나 메꽃은 여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바라본 철둑의 애기메꽃은 정말 예뻤고, 바닷가엔 갯메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꽃빛이 유난히 희고 작으며 잎이 많이 갈라진 애기메꽃을 아내가 좋아해 마침내 초애원 대문간에 키우게 되었다. 심은 게 아니라 저절로 난 것이었다.

메꽃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메꽃이 예사롭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메싹을 쌀가루에 섞어 베 보자기 위에 안쳐 메싹떡을 만들어 먹는데, 쌀가루와 메싹이 조화를 이루어 달작지근 하면서도 쫀득한 맛이 난다.

이 떡의 재료인 메는 늦봄과 여름 사이에 밭이랑에서 싹을 볼 수 있는데, 캐 보면 희고 긴 뿌리가 있다.
잎은 나물로 먹고 꽃은 맑은 장국이나 식초로 무쳐 먹으며 고구마 비슷한 뿌리는 삶거나 구워서 먹거나 튀겨서 먹기도 한다.

생약명 속근근(續筋根), 고자화(鼓子花 - 나팔꽃보다 작고 씨가 잘 맺지 않아 붙은 이름), 면근초(面根草), 미초(美草), 선화(旋花)라고 한다. 기를 보하고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며 얼굴빛을 좋게 한다. 음력 5월에 꽃을 따서 그늘에서 말린다. 온포기를 선화(旋花)라고 한다.

중국명 다완후아(打碗花)는 '재생사발꽃'이란 뜻이고, 일본명 히루가오(ヒルガオ,昼顔)는 낮의 꽃 또는 태양을 좇는 꽃의 뜻. 선화의 선(旋)자는 회전한다는 뜻으로 하루 종일 태양을 따라 도는 꽃의 향일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침에 잠깐 피고 마는 나팔꽃과는 대조적이다.

땅속줄기인 뿌리(旋花根)는 단맛이 있어 밥을 뜸들일 때 쪄서 쓰는데, 배가 찼다 더웠다 하는 데나 오줌을 잘 나가게 하는 데 유효하다고 한다. 또 힘줄과 뼈를 이어주며 쇠붙이에 상한 것을 아물게 하고, 오랫동안 먹으면 몸에 이로우며 배고픔을 잊는다고도 알려져 있다. 메꽃의 '메'는 '밥'이란 뜻으로 밥 대신 먹었던 것을 이름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밥을 '메'라고도 했다. 민간에서는 당뇨병에 쓰며 설사약으로 달여서 먹는다.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고혈압이나 해열, 건위, 이뇨, 해열, 구풍, 강정, 변비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향약대사전엔 <전초(全草)는 혈압과 열을 내리고 대소변을 이롭게 하며 강장, 건위, 소화불량, 당뇨병 등에 좋다>고 되어 있고, 신농본초경엔 <메꽃은 얼굴의 기미와 검은 색을 곱게 하고 기를 늘린다> 고 되어 있다. 심지어 정력제나 흥분제로도 사용한다고.

▲ 갯메꽃 군락.

발그스럼한 빛깔의 메꽃에는 꽃말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한 충성스러운 척후병이 길 안내를 맡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더래. 병사의 활약으로 전쟁에는 이겼으나 쫓기던 적군에게 갈림길에서 발각돼 죽임을 당했대. 적군은 병사가 세운 표지판을 거꾸로 돌려놓고 도망을 갔고, 돌격부대를 뒤따르던 본진이 도착하여 병사를 찾았으나 나팔 모양의 꽃만 보였대. 그 꽃은 무엇인가를 말하듯 간절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고 주위엔 핏자국이 흩어져 있었대. 장군은 충성스런 병사가 죽었음을 직감하고 그 병사의 나팔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생각하여 표지판을 따라가지 말고 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진 명령을 내렸대. 마침내 부대는 돌격부대와 합류해 대승을 거뒀대>.

그래서인지 두 개의 꽃이 표지판처럼 쌍으로 핀다.

바닷가에 자라는 갯메꽃은 연정을 품은 아가씨의 볼처럼 붉게 타는 꽃을 피우며, 해안메꽃, 산엽타완화 등으로도 불리고 어린잎과 꽃을 식용으로 할 수 있으나 약간의 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 뿌리를 효선초근(孝扇草根)이라 하여 진통 이뇨 및 소염제로 쓴다. 잎 모양이 콩팥을 닮아 신엽천검(腎葉天劍)이라 하여 신장염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어려웠던 시절, 이 꽃의 어린잎을 데쳐 나물로 먹었고, 뿌리는 날로도 먹고 삶아서 먹기도 하였으며, 전분 가루를 만들어 국도 끓이고 떡도 해 먹었으니 메꽃 같고 모메싹 같았던 지난날이 눈물겹다.

모름지기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병사처럼 충성되고, 병사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았던 장군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사는 나라가 되길 메꽃을 보며 기원해 본다.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