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랑원추리.

원추리를 한자어(약명)로 훤초(萱草)라고 한다. 원추리는 훤초>원초>원취>원추리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잎은 '넘나물'이라 하여 엄마 젖 마냥 단맛이 있는 맛난 봄나물이다. 잎이 넓어 <넓나물>에서 온 말이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음악책에도 나오는 전래동요 '나물노래'에 <꼬불꼬불 고사리 / 이산저산 넘나물 / 말랑말랑 말냉이 / 잡아뜯어 꽃다지 / 바귀바귀 씀바귀 / 매끈매끈 기름나물> 이란 대목이 나온다. <가자가자 갓나무 / 오자오자 옻나무 / 배가아파 배나무 / 따끔따끔 가시나무>란 대목도 있는 걸 보면 나무 순도 나물로 쳤던 걸 알 수 있다.

대마도 생태탐사를 가서 만난 원추리꽃(와수레구사,ワスレグサ,忘れ草)은 고향 사람마냥 반가웠다. 남아프리카에서도 '데이릴리'라 하여 거무스레한 원추리꽃을 가꾸고 있었고, 캐나다 여러 곳과 뉴욕이나 워싱턴 곳곳에서 활짝 핀 원추리 꽃을 보았다.

원추리꽃은 매일 새로 피고 저녁이면 진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출발이라는 <日新又日新>이 생각나는 꽃이다. <아침에 잠을 깼을 때 지갑 속에 가득한 스물 네 시간으로 미소 짓기를…우리 남은 생애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오늘이 감사로 지새는 하루이기를> 기원하는 꽃이다.

▲ 연노랑원추리

옛 아낙들이 안마당에 심어 나물과 꽃을 즐겼고, 잔디나 띠풀(삘기,피기,삐삐)이 수입되기 전인 조선 중기까지 무덤을 원추리로 입혔다(대운산 가는 들머리에 온통 원추리로 입힌 무덤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추리 훤자를 써서 '훤당'이라 부르며 내당에 원추리를 심고 어머니 낯빛을 닮은 그 꽃을 보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겹(왕)원추리 들원추리 골잎원추리 노랑원추리 각시원추리 애기원추리, 희귀종인 각시타래원추리 등 여러 품종이 있다. 제주도에 피는 담황빛 원추리는 꽃빛이 신비로웠다.

원추리는 여성의 몸을 보호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의남채라 하여 꽃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하고, 꿈길로 어머니가 찾아온다고도 하였다. 아버지가 그리운 날 질경이 씨(차전자) 기름으로 불을 밝히면 꿈속에서나마 뵐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꽃과 뿌리를 차로 늘 마시면 온갖 독을 풀어준다.

월경과다, 대하증, 월경불순, 젖부족, 젖앓이, 이뇨장애 류머티즘 등 부인병에 좋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치료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뿌리를 뽑으면 콩알만한 알뿌리 덩어리(괴경)가 여러 개씩 매달려 나오는데, 멧돼지가 파서 먹을 만큼 영양분이 많아 자양강장제로도 쓰였고 녹말을 추출하여 곡식과 섞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 구황식물로 약성 또한 뛰어나 이 생뿌리를 종기 따위에 짓찧어 붙이면 잘 낫는다고도 한다. 또 꽃의 술을 따 버리고 밥을 지을 때 넣으면 밥이 노랗게 물이 들고 독특한 향기가 나 근심을 풀고 사기를 물리친다고 여겼다.

여린 잎과 꽃을 김치로 담그면 별미였으며 고깃국에 넣어도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에 국을 끓여 먹으며 근심을 털어내는 풍습이 있었다.

'근심을 잊게 하는 풀'로 널리 알려진 약초로 한자로는 훤초(萱草) 망우초(忘憂草) 금침채(金針采) 의남초(宜男草) 등으로 쓰는데, 뿌리를 달인 물은 결석을 다스리고 수기를 내리며 술독을 풀고 결핵에 효과가 있다.

뿌리 생즙은 코피를 멎게 하고 열을 내린다고 한다. 싹과 꽃을 삶아 먹으면 소변이 붉고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번열과 술로 인하여 황달이 된 것을 치료하며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지며 소화를 잘 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 남아공 옛 총독관저의 겹왕원추리.

꽃봉오리를 금침채라 하여 습열을 없애고 가슴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한다. 관절염 상처 종기 요통 등에 뿌리나 잎을 짓찧어 붙이기도 하였다. 원추리에는 독이 약간 있으므로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해 봄 아내에게 부탁하여 못골시장에서 산 원추리나물을 데쳐 실컷 먹은 적이 있었다. 달작지근하고 부드러운 맛이 전해오는 대로 엄마 젖맛 같았다. 그러고 그 날 밤에 설사를 만났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형제가 한꺼번에 부모를 모두 여의었대. 형제는 슬픔에 잠겨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 그러다가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부모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대. 그러나 동생은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무덤가에 난초를 심었지. 그 뒤로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동생은 슬픔이 더욱 깊어져 병이 되었어. 그런 어느날 동생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 말했대. '사람은 슬픔을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그 후로 동생도 부모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고 슬픔을 잊었대. -

이구화의연수서(延壽書)에 <원추리 어린 싹을 나물로 먹으면 홀연히 술에 취한 것 같이 마음이 황홀케 된다. 그러므로 이 풀을 망우초라 한다>고 씌어 있다.

전해 오는 비슷한 이야기로 동생은 '슬픔을 잊으려는 것은 아버지를 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기억을 잊지 않게 해준다는 자원(개미취)을 심어 신통력을 얻었다고도 한다.

평화공원과 대연수목원에 원추리가 많이 피었다.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살라는 메시지처럼. 어머님이 그리운 사람은 밤에 살짝 가서 만나보시라. 그리고 꿈길로나마 부드러운 그 가슴에 한 번 안기시라. 그리고 올 여름도 편안히 넘기시라. 원추리마냥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며.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