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달새가 합창하고 있는 것 같은 산괴불주머니의 꽃말은 '보물주머니'다. 황령산이나 장자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꽃배열 종달새 연상
멜라초, 산뿔꽃 등
다양하게 불려
끓여서 차로 마시면
불면증에 도움

오륙도 가까이 사는 지인으로부터 '멜라초'를 구할 수 없겠느냔 부탁을 받았다. 멜라초가 무어냐는 반문에 '산괴불주머니'라고도 한다고 일러주었다.

산괴불주머니야 황령산이나 장자산 뿐아니라 동네 어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어서 어디 쓸 거냐 물었더니, 요즘 불면증이 심해져서 차로 끓여 마시고 싶다고 한다. 유독식물을 차로 마신다고? 깜짝 놀라 물었더니, 이 멜라초를 끓여 먹으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멜라초는 호남 사투리로 면라초에서 왔다고 한다.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이른 봄 갓 돋아난 순을 더운 물에 데쳐 소금물에 담갔다가 맹물에 담가 아린 맛을 제거하면 독특한 향과 맛이 담긴 별미 나물이 된다는 것이다.

‘괴불주머니’란 이름이 좀 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뜻을 알고 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옛날 아이들이나 서민들의 헝겊 노리개를 일컫는 말이니까. 비단 조각으로 삼각 모양의 겹을 만들어 수를 놓은 다음 그 안에 솜을 탄탄하게 넣어 술을 양쪽으로 달고 세 개를 이어 노리개로 만들어 옷고름에 찼던 것이다. 꽃차례나 씨방이 아이들의 귀여운 괴불주머니를 닮았다.

부탁대로 차를 구하러 도개를 시작한 영도다리 입구의 건재상에 갔으나 한결같이 그런 차는 없다는 거였다. 대신 귀비탕이나 산조인(멧대추)이 불면증에 좋다고 하였다.

경상도 출신으로 전주 우석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안도현 시인에 따르면 멜라초와 더불어 ‘개미’란 말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단다. 음식 맛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감칠맛이 나면서 깔끔하다는 뜻인데, 이 말이 ‘가미’에서 왔다고 한다. 양념을 넣어 맛을 더한다는 뜻도 있지만 입에 맞는 맛이란 의미도 사전에 있다는 것.

전주 근처 완주 안덕면에서는 이 멜라초 나물을 판매하고 있다.

“안덕마을 주민들은 옛날부터 많이 드셨는데 아직까지 부작용 현상은 없는 것 같구요. 그런데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쓴나물입니다. 먹다보면 저희들은 괜찮은데 처음 드시는 분들은 힘들어 하셔요. 대신 잠에는 탁월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드셔도 30분 정도면 꾸벅 꾸벅’이라는 광고와 함께 전라도에선 보리순으로 국을 끓이고, 길가의 광대나물도 코딱지나물이라 하여 맛나게 무쳐 먹고, 독이 든 새순도 나물로 만들어 먹는데, 우린 통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월년초(두해살이풀)로 북한에선 산뿔꽃이라 부른다.

신순애 시인은 두 해의 수명 앞에/그 무엇을 남길 건가/빵빠레 나팔 소리/도금한 악기마다/속이 빈 줄기를 타고/힘차게 뿜어낸다>고 생태를 표현한다. 뿌리를 국화황련이라 하여 열을 내리고 염증과 통증을 없애며 독을 풀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피부병과 종기, 이질과 복통, 독이 올랐을 때나 풍기로 눈이 아플 때, 타박상 등에 처방한다.

산괴불주머니의 영명은 Beautiful Corydalis. 코리달리스는 종달새를 뜻한다. 현호색과의 종명이기도 하다. 얼른 보면 꽃차례가 종달새가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보기엔 경성대 조류관에 있는 황조(꾀꼬리)를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종례 수필가가 오륙도 갈맷길에서 황금빛의 현호색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현호색과 닮았다. 이 꽃에도 슬픈 전설이 있다.

--그 옛날 어느 산골에 분이라는 소녀가 살았더래. 소녀는 늘 산속을 뛰어다니며 약초를 캐며 즐겁게 살았대. 소녀가 약초를 채집한다는 소문이 주위에 퍼지면서 아픈 사람들이 약초를 얻어 갔대.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찾아왔어. 소녀는 약초로 그 청년의 병을 낫게 해 주었대. 그런데, 남자처럼 활달하게 지내던 소녀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찾아온 것이었다지 뭐야. 그로부터 얼마 뒤, 분이는 마을 앞을 지나다가 청년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대. "저 도령이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구나.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내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다니 너무 괴로워". 집으로 돌아온 분이는 슬픔에 잠겨 지내다 끝내는 병이 나 그만 죽고 말았대.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약초를 캐던 소녀의 아름다운 마음처럼 높은 산의 풀밭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 되었대. 그리고 아린 맛이 난대."--

세상엔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모두의 뜻대로 되도록 놔둘 수도 없다. 인간이란 죄성과 욕심, 이기심이 있어, 뜻대로 쉬 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아린 맛은 있지만 좋은 나물이 되는 것처럼 자신을 조금만 굽히면 한결 세상다운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코르달리스 - 산괴불주머니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 종달새 한 마리가 그대 위에 떠서 노래하리라. 삐잇 노글노글 나는 떴어라 지리지리지리종 지리지리종 종달 종달.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