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기념공원에 피어 있는 봄까치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 날 이겨 가지세요' 이다.

봄이 오기 전에 피는 대표적인 우리 풀꽃으로 봄까치꽃과 광대나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털별꽃아재비와 개쑥갓도 있는데, 어릴 적 토끼를 먹일 때 겨울 들판에서 많이 본 풀꽃이다.

 콩깍지나 마른 잎사귀, 무청과 배춧잎을 먹이다 싫증나면 망태를 메고 뒷동산의 냉이나 씀바귀, 방가지똥, 주름잎, 괭이밥, 꽃다지 등 로제트(장미꽃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겨울을 나는 식물체)를 뽑아 먹였다.

백설처럼 새하얀 털빛과 빨강 눈을 가진 토끼가 오물거리며 맛나게 먹는 모습에 한겨울 추위도 잊고 손등이 갈라지도록 열심히 뜯어 먹였다.

그 뒤, 도심에 살게 되면서는 겨울꽃을 보기 힘들어 아내와 함께 기장 바닷가에 나가 봄까치꽃을 구경하였다. 모진 추위 속에 붉게 피어난 광대나물이나 목을 잔뜩 움츠려 핀 개쑥갓과 방가지똥의 노오란 꽃을 보고 봄이 가까왔음을 느끼곤 하였다.

봄까치꽃은 밭둑이나 산기슭 양지쪽에서 햇살이 제일 강한 정오 무렵 잠간 피고 이내 진다. 그러나 필 때는 수백송이가 일시에 피어 장관을 이룬다.

'봄까치풀'이라고도 하는 봄까치꽃의 정식 이름은 '개불알풀'이다. 열매 모양이 꼭 그렇게 닮았다는 것이다.

봄까치꽃은 큰까치꽃 눈까치꽃 선까치꽃 등 유사종도 많다. 마치 풀 속에 요정이 숨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을만치 깜찍하고 앙징맞은 꽃이다.

영명은 '새의 눈'이란 뜻의 Bird's eye 또는 Cat's-eye. 정말이지 눈을 닮았다. 일본에서도 犬の陰嚢(이누노후구리;いぬのふぐり)라 하고, 큰개불알풀은 大犬の陰嚢(오오이누노후구리), 선개불알풀-立犬の陰嚢(다찌이누노후구리)라 한다. 어쩌면 이 민망한 이름이 일본에서 건너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자생란 이름에 개불란(개불알꽃;'복주머니란'으로 순화됨)이 있는 걸 보면 꼭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 우리에게서 열도로 건너간 정다운 이름일지도 모른다. 중국에선 슈앙생포포나(双生婆婆纳 ;shuāngshēngpóponà)나 婆婆纳 (póponà), 또는 간차이(甘菜;gāncài)라고 한다.

요즘엔 좀개불알풀도 발견되고 있다.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의「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에 보면 <봄까치풀>로 순화된 <개불알풀>은 원래 <봄까지풀>로 겨울부터 봄까지 핀다고 한다.

개불알풀(봄까치꽃)은 큰개불알풀과는 달리 두해살이 우리 토종식물. 제꽃가루받이를 피하기 위해 암술이 삐죽 튀어 나와 곤충으로 하여금 먼저 암술머리를 건드리면서 다른 꽃가루를 묻히게 되어 있다.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동료교사들과 함께 좌천 장안사 계곡으로 봄 하이킹을 갈 기회가 있었다. 눈썰미 있는 동료 하나가 열매와 꽃이 동시에 달린 봄까치꽃을 보고 신기해 하며 내게 그 이름을 물어 왔다.

원래는 개불알풀이었는데 듣기 거북하다 하여 봄까치풀로 순화해서 부른다고 했더니 "거, '개불알'이 봄까치보다 훨씬 토속적이고 정다울 뿐아니라 부르는 재미도 있다"며 여교사들에게 들고 가 이름을 크게 말하면서 볼 붉어지는 걸 재미있어 하였다.

우리가 큰개불알풀이라고 부르는 꽃의 학명은 Veronica persica로 라틴어로 '베로니카의 복숭아'라는 뜻인데 이 꽃을 서양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인의 이름으로 부르는 연유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실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드렸는데 그녀의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졌다고 한다.

서양사람들은 이 꽃에서 예수님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베로니카라고 부른다. 사람의 얼굴 모습이 보이는 듯 하지만 굳이 예수님의 얼굴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옛 서양사람들은 고달픈 삶 속에서 이 꽃에서나마 구세주의 모습을 찾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종소명인 persica는 '복숭아'란 뜻인데 흔히 우리가 개불알과 닮았다고 하는 이 꽃의 열매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설에서는 고달픈 삶 속에 이 꽃 속에서만이라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했던 위안에의 간절한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얼어붙은 땅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 헤메야만 했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봄이 더욱 느릿느릿 왔었다. 오랜 옛적 서양사람들은 황량한 겨울 들판에 피어난 작은 꽃에서 메시야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머지않아 봄이 오리라는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 나물로도 먹을 수 있고 항암작용과 말라리아에 효능이 있으며 풍습으로 인한 요통과 피를 멎게 하고 구토증에도 좋다고 한다.

제주도의 김순남 시인은 털별꽃아재비와 봄까치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헤아려 보는 별 하나 나 하나 불러보는 별꽃, 식물도감에는 개별꽃으로 적혀 있으며 다른 이름은 들별꽃이다. 접두사 <개>자는 '바깥' 또는 '들'이라는 뜻이기에 원래의 어원에도 어긋나지 않고 부르기도 좋은 '들별꽃'이라 부르고자 한다.

천진한 꽃모양과 '귀여움'이라는 꽃말이 참 잘 어울리는 들별꽃이 떠나갈 무렵이면 햇살은 점점 뭉텅이로 불어나 하늘을 끊어다 길가에 조각해 놓은 듯이 개불알풀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꽃이 지고 난 뒤 씨앗이 긴 줄기 끝에 달려 늘어진 모양새가 마치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 봄까치라고도 하지만 개불알이라는 어감의 민망함 때문에 어거지로 갖다붙인 것 같기도 하고, 선조들의 눈썰미가 묻어나는 본래의 이름이 더 정감이 가서 좋다. 작지만 결코 시들지 않으며 때가 되면 홀연히 떨어지고 마는 그 단호한 절개로 인해 꽃말이 '날 이겨 가지세요'다.

이 얼마나 가상한 생명의 자존이던가. 물질만이 최고의 가치인양 횡행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개불알풀꽃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봄까치꽃, 네 꽃 날개를 보노라면/어릴적 소꿉동무들이 생각난다/고향집 돌담 아래/네가 엄마 나는 아빠 그리고 아기/난 아기도 돼/엄마 밥 줘 앙앙/그래, 우리 아기 착하지/엄마가 얼른 밥 해 줄게/광대나물 김치에 냉이꽃 국/괭이밥 씨는 쌀밥이야/돌칼로 슥슥 썰어 흙으로 무친 반찬/얌냠 맛있어 엄마/조개껍데기 그릇에 납작돌 밥상/나뭇가지로 금을 그으면 울타리가 되고/땅에 꽂은 가지는 사립문이 되었지/엄마 나 잘래/그래 그래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예쁘지/삐이걱 삐걱 들일 갔던 아버지 돌아오셨다/여보, 어서 와요/고향 마을 숙이도 그 때 일을 생각할까/봄까치꽃 피는 언덕을 흐르는 강물/구순의 노모님을 지키느라/파랗게 불 밝힌 담벽의 봄까치꽃>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