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정 소설가

영혼의 골다공증 시대를 살며 언어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한다.

현실이 너무나 극적인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 삭막하고 사악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어떤 말들로 위무를 받아야할까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이어지는 새해 벽두이다.

흔히, 21세기는 빅사이즈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코끼리를 접어 넣을 만큼의 냉장고를 집집마다 가진 현대인들, 그들에게 지금 행복한지 묻고 싶다.

높은 배기량의 차를 타고 모두들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어느 시대의 왕들보다 풍부한 물질과 문명에 에워싸여 있는데 왜 이토록 인간들은 마음의 온도가 식어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인문학은 사회학은 철학은 또 무슨 답변을 내릴까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을 겨울이다.

하고 많은 작가 중에서 밥 딜런이라는 가수에게 노벨은 왜 문학상을 안겼는지에 대하여도 우리는 질문해야만 할 지점에 서 있다.

노멀하드코어, 평범하지만 엣지있게 옆구리를 쿡 찔러주는 진지한 농담 같은 성찰을 안겨줄 그 무엇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해마다 1월이면 가슴이 설렌다.

기다리는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설이라는 명절의 온기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아마 그보다 더 먼 기억을 소급해가면 겨우내 끓여 먹었던 가래떡과 입맛을 달구던 강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시에서 돌아오는 피붙이들의 손에 걸린 작은 선물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상자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산다. 21세기, 춥지만 따뜻한 겨울에 우리들은 어떤 상자를 안고 있을까. 또 그 상자는 어떤 것들로 채우고 싶을까.

바스코 포파라는 시인의 ‘작은 상자’가 떠오르는 시간이다.

젖니를 가진 상자에는 벽장이 들어오고, 집과 대지와 도시 그리고 세계가 들어오게 된다. 작은 상자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 위하여 축소된 모든 세계를 담는다.

우리도 지금으로부터 한 십여 년이 지나면 2017년을 어떤 모양으로 상자에 담아두고 있을까.

이삼십년 전에는 아버지의 밥그릇이 아랫목에 앉아있었다. 이불 아래 발을 밀어 넣다가는 밥그릇이 무너져서 혼이 났던 기억과 아버지가 남겨준 밥을 맛나게 긁어 먹었던 신화의 시간을 건너온 사람은 그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을.

가난했지만 어른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았고, 지금처럼 전기밥솥에 보온까지 되는 편리와 물질의 풍요를 누리지 못했지만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어쩌다 할머니 댁에 가면 벽장 속 멱동구미를 꺼내어 엿이나 곶감을 주시던 정을 잊지 못한다.

모두들 그 선한 눈빛을 가슴에 담고서 타관객지에 디아스포라가 되어 살지만, 가슴에 벽장 속의 온기를 늘 담고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일들을 해 줄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다.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들 요양원으로 병원으로 떠나가고 우리도 언제부턴가 선한 웃음을 잃어버렸다. 대신 인간들은 탐욕의 도시에서 보라빛 와인에 취해 백일몽을 꾼다.

도심의 상처에 청보라빛으로 멍이 든 인간은 산성비 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홀로 걸으며 몸서리를 친다. 아무리 일을 해도 월급은 통장을 잠시 스치는 숫자가 되어버리는 시간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물질의 홍수는 아니었지만 이토록 각박하지는 않았던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병명은 정신과 쪽이다. 살기가 힘이 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인간에게 내려지는 처방은 알약이다.

그 덕분에 세계 도처가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언어는 입에 담기 힘들만큼 거칠고 냉소적이다. 인간은 말로 타인에게 정서적 화상을 입히고,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거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시대에 어떤 말로 따뜻한 체온을 전할 것인가. 우리는 무덤에 어떤 말들을 잠재울 것인가. 말은 관심이고 말은 관찰이기에 나와 너의 마음을 열어주는 문이다.

2017년의 문을 열며 어떠한 말을 제일 먼저 했을까. 정유년에는 언어의 온도가 데워져서 좀 더 다정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