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기념공원 조성 당시의 모습으로 1952년도에 촬영됐다. <사진제공·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 윤형곤

1950년 한반도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6·25전쟁은 냉전 기류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전쟁이다. 그런데 국제정치사가들은 ‘6·25전쟁’이라 하지 않고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구속한다고 하였다. 6·25전쟁의 냉전사적 배경을 연구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한 고증작업을 하지 않으면 여느 외국인들은 6·25전쟁을 세계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발생한 남한과 북한 간 한국인의 전쟁(Korean War)으로 기억할 것이다.

6·25전쟁의 세계정치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우리 동족과 참전 국가의 국민들이 함께 전쟁의 아픔을 나눌 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산은 UN군이 참전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확보하여 반격을 노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지역으로서 국제사회에 의미를 갖는 전쟁 상흔이 많이 남아 있어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지역이다.

부산 남구는 유엔평화기념관에 그날의 기록을 담아두고 있다. 특히 부산 남구는 세계사에서 아픈 전쟁의 흔적을 보듬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UN기념공원이다.

UN공원, 전쟁의 상흔 보듬다

UN기념공원에 안장된 UN군 중 영국인 전사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885명인데 이 숫자에서 영국이 얼마나 6·25전쟁에 치열했는가를 알 수 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개전에서 종전까지 독일과 전선을 형성했고, 무차별 폭격을 받아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44만 명에 이를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이에 영국은 전후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개혁과 사회재건에 필요한 열정적인 대책을 세우면서 베버리지 복지개혁을 했다.

베버리지 복지개혁의 핵심은 국민보건서비스(NHS, the National Health Service)로 구체화되는데, 이것은 전후 노동당 정부 보건장관 베번의 끈질긴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베번은 1951년 노동장관이 되면서도 NHS 확대와 사회보장비를 증대를 요구했지만, 당시 영국은 6·25전쟁에서 늘어나는 전사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의회는 사회보장비 삭감에 반대하고 군비 증강을 결정하면서 더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었다.

결국 6·25전쟁으로 당시 베버리지 복지모델의 완성은 실패하였고 그때의 전혼은 본국의 혼란을 모른 채 UN기념공원에 고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세계전쟁사에 의미를 가지는 전투 총성이 부산 남구 앞바다에서 울렸다.

남침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인민군은 UN과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군수물자와 지원병력이 들어오는 최후방 부산을 교란하기 위해 속속 동해안을 침투해 왔다.

450톤 폐군함 나라를 구하다

침투하는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해군은 진해에서 동해로 백두산함(PC 701)을 출항시킨다.

당시 백두산함은 미국 뉴욕에서 구입한 450톤급 폐군함으로 남한 최초의 군함으로 탈바꿈해 묵호로 향하던 중 1950년 6월 26일 새벽 0시 30분 부산 남구 앞바다에서 북한 무장 수송선을 발견한다.

인민군과 소련인이 승선한 것을 확인하고 필사적으로 사수하여 전쟁 중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결국 UN군의 부산 진입은 안전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또 한편 남구에 새겨진 세계전쟁 유산으로 미8군사령부 건물과 부산 스웨덴 병원이 있다.

지금 부경대 대연캠퍼스 워커하우스는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사수한 윌턴 워커(1889~1950) 중장의 지휘본부가 있던 곳으로 1950년 9월 초 대구에 있던 미8군사령부의 통신장비를 사수하기 위하여 엄선된 곳이다.

낙동강 방어선 - 워커라인

그리고 당시 UN군 사령부는 미군 야전병원이 철수하자 스웨덴 야전병원을 최후방 부산에서 미8군사령부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스웨덴 야전병원은 처음에는 하야리아 부대(Camp Hialeah)에 자리를 잡았고, 병상증설이 필요하여 부산상고 자리로 이전하였다. 그러던 중 1950년 11월 말 중공군이 본격적 공세를 펴면서 동상환자가 급증하여 후송병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의미 있는 사실은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고, 스웨덴 야전병원 운영주체는 적십자이었기에 치료 대상은 유엔군과 한국군 전상병과 함께 북한군, 중공군 포로도 치료하였다는 것이다.

스웨덴 병원, 전염병 치료 역할

이러한 박애 정신이 이어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 후에는 부산 스웨덴 병원(Swedish Hospital in Pusan)으로 이름을 바꾸고 1955년 남구 대연동 국립부산수산대학교 내로 이전하면서 민간인 전염병 치료와 혈액은행 역할을 돈독히 하였다.

정전 후에도 주둔하는 것은 적십자 정신에 위배된다는 스웨덴 여론에 따라 아쉽게도 1957년 4월 철수하지만, 부산 스웨덴 병원 의료인들이 계속 남아 국립의료원 설립에 기여하면서 박애정신을 잇게 된다.

많은 참전국 병사 가족들과 우리나라 국민 거의 모두는 가족사에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억들을 흩어지지 않도록 잘 정리해 두는 것이 세계평화와 우리 안보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 유엔평화특구 자리에 유엔평화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지나간 전쟁 상처와 유흔에 관한 기억들을 유엔평화기념관에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부산, 특히 부산 남구가 지켜야 할 역할이 작지 않다.

용당동 가나병원장